내게 KBS는 무엇인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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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 KBS를 어떻게 하려는 건가

정부가 방송법 시행령을 고쳐 TV수신료를 KBS가 직접 징수하게 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전력이 수신료 2500원을 전기요금과 함께 걷어주었다. 한전이 징수 대행 수수료 169원을 가져가고 남은 2331원 중에서 2261원은 KBS가, 70원은 EBS가 받았다. 방송법에 따라 일반 가정은 가구당 TV수신료 월 2500원을, 영업시설은 보유 텔레비전 수에 2500원을 곱해서 돈을 내야 한다. 납부 거부자가 늘어나거나 징수비용이 많이 들 경우 KBS와 EBS는 수입 감소로 인해 경영난을 겪을 것이다.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멀쩡하게 일하던 방송통신위원장을 내쫓고 이동관 씨를 후임자로 지명했다. 국회가 추천한 야당 몫 방통위원에게 석 달이 넘도록 임명장을 주지 않고 있다. 여당 추천 이사를 제외한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MBC 지배주주) 이사회 구성원을 다 해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모두는 공영방송을 장악할 뜻이 없다면 할 이유가 없는 행동이다.

KBS는 국민의 방송인가

정부는 왜 굳이 TV수신료를 걷기 어렵게 만들었을까? KBS가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악해서 우리 편으로 만들든가,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망하게 하자. 그런 심보인 듯하다. 과연 KBS는 야당 편인가? 야당을 지지하는 나는 단 한 번도 KBS가 우리 편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야당 정치인과 당원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니라는 점에서 KBS를 ‘국민의 방송’이라 하는 게 맞나? 아니다.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가끔 그렇게 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KBS는 누구 것인가. KBS 임직원들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이해관계와 판단에 따라 KBS의 보도 행태와 방송 내용이 달라진다. 나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다. 오늘의 KBS를 우리가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공영방송의 최대치로 인정한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 KBS는 ‘정권의 나팔수’ ‘군사독재의 기관지’였다. KBS나 평양방송이나 거기서 거기 같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전후한 시기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TV수신료 납부 거부를 선동하는 스티커를 시내 곳곳에 붙이고 다녔다.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KBS는 임직원들의 방송이 되었다.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했고 여야 정치권이 이사회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들이 기자와 피디들의 활동을 전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했다. 1990년 첫 파업부터 가장 최근인 2017년 파업까지, 기자와 피디들은 여러 어려움을 뚫고 KBS를 ‘자신들의 방송’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국민의 방송’이라 여긴다.

나는 40년 넘는 세월 동안 수신료를 납부한 방송 소비자로서 KBS에 불만이 많다. 상업광고를 하지 않는 KBS1 채널만 거론하자. KBS는 공영방송답지 않게 보도 기능이 빈약하다. 일일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민간 방송사와 쓸데없는 경쟁을 한다. 품격 있는 교양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다큐 프로그램을 그다지 활발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뉴스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싱겁고 밋밋하다. 재난방송을 할 때 그나마 가장 확실한 ‘국민의 방송’이 된다.

KBS 임직원들 중에는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자신의 지위를 개인적 이익을 얻는 데 쓰는 사람도 있고 공익을 진작하는 데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이도 있고 그런 동료를 다독이며 공존하려고 애쓰는 이도 있다. 생각과 판단과 스타일과 정치성향이 다른 기자와 피디들이 서로 충돌하고 논쟁하고 절충하고 타협하면서 균형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뉴스와 다큐 등이 내 마음에 들 수가 없다. 나는 ‘불만 있는 소비자’인 것이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님을 알기에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동관 씨는 다른 듯하다. 그들은 ‘불만 있는 소비자’가 아니라 ‘격노한 권력자’로서 KBS를 대한다. 손을 보려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망하게 할 심산이다. 그렇지만 잘 될 것 같진 않다.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꼭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풀이 하는 데는 좋겠지만 득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기관지’ 전성시대

“선전 선동을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의 신문 방송을 언론이 아니라 기관지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진실이 아닌 주장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동관 씨가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자 신분으로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관지 언론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답에는 더 격하게 동의한다. “그건 국민이 판단할 문제이고 본인들이 잘 알 것이다.”

국민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리고 본인들이 더 잘 알 수 있도록, 어떤 언론이 기관지인지 내 판단을 말하겠다. 기관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권력자를 비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찬양한다. 둘째, 권력자를 비판하는 개인과 집단을 공격한다. 셋째, 권력자의 목적 성취를 방해한다고 판단하면 사실이라도 보도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허위보도까지 한다. 어떤 신문과 방송이 떠오르는가? 분명히 말하자. 일단 KBS는 아니다. KBS가 이런 언론이라면 윤석열 정부가 TV수신료 분리 징수를 강제했겠는가.

정치권력만 권력인 건 아니다. 경제권력, 언론권력, 법조권력도 권력이다. 그런 권력은 5년에 불과한 대통령의 정치권력과 달리 교체되지 않는다. 어떤 경제신문은 ‘재벌당의 기관지’다. 어떤 신문과 그 신문사가 만든 종편 방송, 어떤 통신사는 ‘오너당의 기관지’다. 이런 언론은 오너가 추구하는 목적(사회 정치적 영향력 확보와 이윤 획득)을 실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목적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사회적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오너의 목적 실현에 도움을 주는 검찰권력이나 경제권력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너가 지지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보수 정부에 대해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 비판을 삼간다. 기회 있으면 적극 찬양한다. 비록 사실이라 해도 대통령과 정부여당에게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보도한다.

대를 이어 경영권을 상속한 족벌언론, 건설업자가 대주주인 건설사언론, 대기업이 대주주인 경제신문들은, 이동관 씨가 말한 바대로, 언론이 아니라 기관지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 기관지에 몸담은 ‘선전일꾼’들은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마치 ‘언론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기득권 복합체를 비판하는 모든 개인과 정치세력을 대중에게서 고립시키려고 오늘도 능수능란하게 선전 선동을 수행한다. 진보 시민단체와 민주당, 관련 개인들을 타격 대상으로 삼는다. 필요하면 언제든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리고 진실을 은폐하며 정서적 혐오감과 적대감을 부추긴다. 그들이 생산한 기사로 넘쳐나는 포털의 뉴스 면을 보면 대한민국은 희망 없는 사회다. 보도의 수준이 너무 저열해서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과 귀를 씻어야 할 판이다.

통나무 깎아 젓가락 만들기

윤석열 정부는 KBS와 MBC까지 정권의 기관지로 만들고 싶어 한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민영화’를 내세워 재벌한테 던져주면 된다. 한두 해만 지나면 민영 KBS와 민영 MBC는 ‘족벌종편’과 별 차이 없는 방송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당 의석이 적어 법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공영방송을 사유화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잘 되지도 않고 효과도 의심스러운 장악 시도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화가 날 만한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KBS를 훌륭한 공영방송으로 여기지 않는다. 훌륭한 공영방송이 되리라는 기대도 없다. 미디어 기술이 더 많이 발전해서 지상파 공영방송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올 때까지 임직원들의 방송으로 존속하리라 본다. 윤석열 정권의 기관지가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동관 씨가 방통위원장이 되어 이사를 교체하고, 새 이사회가 사장을 바꾸고, 바뀐 사장이 말 안 듣는 기자와 피디들을 해고하고, 그렇게 해서 KBS를 장악해봤자 무너지는 정권을 붙들어 세우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짓을 한 탓에 정권이 더 처참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

돌이켜보라. 언론통폐합과 보도지침으로 모든 언론을 정권의 기관지로 만들었던 전두환의 권력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월간 말>이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수집한 열 달치 <보도지침>을 폭로한 것이 1986년 9월이었다. 1년도 되지 않아 6월민주항쟁이 터졌다.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었던 시대, 잡지와 유인물과 입소문만으로도 우리는 그 일을 해냈다. 어디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면 해 보라. 통나무 깎아서 젓가락 만드는 것처럼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 젓가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망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리라.

*추신: 해외출장 때문에 다음 회 칼럼을 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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