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국이 부국을 돕는 조세도피 비즈니스

역외 탈세범들의 조세도피처에 대한 언론의 ‘반짝 쇼’가 있은 후 충격과 분노도 면역이 되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한국인 명단을 모두 공개해 언론인들의 취재도 또 검찰과 국세청의 탈세범 추적도 훨씬 수월해졌기에 탈세범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한겨레는 ‘전두환 재산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두환 사전 1.0’란 이름으로 정보공개를 하고 전두환 재산 찾기에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재산이 29만원뿐인 ‘불쌍한’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도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으니 전 씨 집안은 돈을 사라지게 하는 요술방망이라도 숨겨놨나 보다. 12.12 사태의 또 다른 주인공 노태우도 전 씨 집안에 뒤지랴 유사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불법적으로 혹은 편법으로 빠져나간 자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갈까? 글로벌 금융 감시 단체인 GFI와 빈곤 퇴치운동 단체인 ASAP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매년 1조 달러(약 1150조원)에 이르며, 이 돈은 선진국으로 흘러간다. 흔희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적 지원을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나, 그 실상은 정반대이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1달러가 들어가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빠져나가는 돈은 10달러나 된다. 이렇게 가난한 자가 부자를 돕고 있는 꼴이니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따르면, 2000년대 초 세계 총수입의 80%, 또 세계 총주식의 98%가 북반부 선진국들, 즉 OECD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으며, 세계 금융 및 경제유통의 80% 이상이 경제선진국들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불균등한 관계는 해소되기는커녕 점차 심화되어, 세계인구의 80%는 20%를 위해 일하고 존재하는 셈이다. 사상 최대의 부가 축적되고 있음에도 다른 한쪽에선 10억의 세계인구가 기아에 허덕이는 이 모순된 현상은 자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본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자원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공정한 게임은 왜 계속 지속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이 불평등한 관계를 만든 장본인들에게 그 불공정성을 수정하라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종속관계, 즉 수백 년 간의 식민통치시대를 통해 착취와 수탈로 경제적 부를 획득했고, 또 그 불공정 관계가 유지되도록 게임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창조 발전시킨 이들에게 ‘너희들의 더러운 치부를 드러내고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소리와 같다.

불공정한 게임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 대륙엔 다이아몬드, 금, 석유, 코발트 등 온갖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국제적 무역관계와 자원분배가 공정하게만 이루어진다면 아프리카 전 지역 주민들이 모두 부자로 살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식민통치에서 독립되었지만 자원수탈은 다국적기업들의 교활한 수법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자원수출로 걷어 들이는 세금은 거의 없고, 수익금은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간다.

ASAP 단체는 개발도상국에서 자금이 새나가는 주요 원인으로 부정부패, 밀매, 왜곡된 무역가격, 돈세탁 또는 조세도피 등을 들고 있는데, 이 빠져나간 자금은 결국 선진국으로 흘러들러간다. 이는 결코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이 남(개발도상국)-북(선진국)의 불평등 관계와 불공정 무역거래에 대해 국제 시민단체들이 무수히 항의하며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착취현상은 국제기구들로 정당화시켜 왔다. 심지어 법적 보호를 받는 조세도피처들을 이용해 ‘합법적 불법행위’를 부추기면 이득을 취해 왔다. 세계 언론과 NGO단체들이 밝혀내듯 그 배후에는 세계를 쥐고 흔드는 금융자본이 있다.

60개가 넘는 전 세계 조세도피처가 거미줄 같이 짜인 네트워크로 지구상의 검은 돈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세계 조세도피처의 수도’라 불리는 영국 런던의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글로벌 조세도피처의 심장부로 전 세계의 조세도피처 망을 만들어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이번 역외 탈세 사건이 국제적 파장을 일으키며 세계시민들의 분노를 샀고, NGO단체들이 시티어브런던 앞에서 그 추악한 실체를 공개하고 전 세계 조세도피처 문을 닫으라고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다.

런던 속의 런던인 시티오브런던이 글로벌 금융회피처의 배후이자, 글로벌 검은 금융의 블랙홀이며,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의 어두운 면으로 그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이 금융도시는 어떤 국가의 통제도 받지 않는 ‘금융자유도시’로 영국 영토 내에 있으면서도 영국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시티오브런던은 ‘바티칸’과 비유되곤 한다. 바티칸은 로마 속의 또 다른 로마인 도시국가로 이태리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또 그 어떤 정부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또한 가톨릭신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바티칸이 유지하는 그 ‘비밀주의’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시티오브런던은 약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세계금융의 탯줄 역할을 해온, 존재하면서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금융자본의 중심지로 통한다. 자본가들이 모인 이곳은 ‘국경 없는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유통’을 위해 각 정부에 로비활동을 벌이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시티오브런던은 특히 영국의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거미줄 같은 글로벌 조세도피처 네트워크를 건설해 놓고 세계금융경제를 배후에서 조종해 왔다.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도피처로 알려진 섬들은 사실상 헛것에 불과하며, 세계 곳곳에서 유령회사를 통해 사라진 자금은 결국 시티오브런던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요즘 1826년 존 애덤스의 말이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시티오브런던의 행태를 비유하기 위해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즉 “한 나라를 정복하고 예속시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무력(검)으로, 다른 하나는 빚으로(There are two ways to conquer and enslave a nation. One is by the sword. The other is by debt.)”라는 문구다.

시티오브런던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대출을 주고 갚지 못했을 땐 저당 잡힌 재산을 하나하나 몰수하는 방법으로 부를 키운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출로 쉽게 내 집 마련하고 결국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집은 경매로 넘어가 결국 은행 손에 들어가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특히 금융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세계 각 국의 정부에 자금을 대출해 주고 그 대가로 법적 규제를 완화시키도록 압박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빚더미에 앉아 있는 각 국 정부들에게 ‘자유화’, ‘탈규제화’ 그리고 ‘민영화’를 추진하도록 로비를 하고, 정부들은 금융경제에 대한 온갖 규제를 풀고 공공자산은 팔아치우고, 그 돈은 다시 자유롭게 사라진다. 정부는 금융자본이 자유로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공적자금까지 조세도피처로 빼돌리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이도록 방관하고, 금융자본과 결탁한 정치인, 은행, 회계법인, 로펌변호사 등의 공생연합체의 도움으로 법적 하자는 없다고 발뺌한다.

이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앞장서 추진한 미국은 과거 대출을 가장 많이 주는 나라에서 현재는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로 전락했다. 영국은 경제발전정책으로 비밀주의 금융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시티오브런던의 글로벌 금융센터로써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해주고, 동시에 유령회사설립을 합법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결국 국가경제는 왜곡되고 금융범죄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 왔다. 영국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촉진시켜 온 것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고전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유령의 손’으로 근대화 된 시티어브런던은 글로벌 금융자본을 좌지우지하며, 대다수의 삶을 파괴하는 길로 몰아넣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국들의 국가경제도 ‘빚잔치’ 경제가 돼버려 여지저기에서 반란과 폭동이 발생하고 있는데,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찾아 치유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배가 침몰위기에 처하자 이미 개인 헬기를 이용해 탈출구를 마련해 놓고 유유히 사라지고, 대다수는 구멍 난 구명보트에 생사를 맡겨야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세계는 하나’를 외친 세계화의 주역들은 ‘세계는 멸망해도 우리는 산다’라는 그들만의 구호로 경제파탄의 어떠한 책임도 회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서 빠져나간 자금과 개발도상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선진국에서 해외로 유출된 자금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지 않는다. 단지 공적영역으로 들어와야 할 세금과 같은 자금이 ‘합법적 돈세탁’을 통해 사적영역으로 이동해 다시 선진국들의 금융기관으로 흐른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들이 조세도피처를 제공하고 금융자본의 비밀주의를 보장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왔지 않는가?

미국이나 유럽의 부호가 아프리카 리비아, 콩고, 수단, 혹은 파키스탄이나 캄보디아 등의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도피시켰다는 소리를 들어 봤는가? 선진국의 부호나 기업, 개발도상국들의 독재자들이 해외자금을 도피시키는 곳이 대부분 유럽이나 역외 영국령과 미국 등으로 정치적으로 안정된 또 안전한 제도적 장치로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 조세도피처들이다.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법적, 제도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곳에 누가 자신의 검은 돈을 맡기겠는가?

국제적 항의와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티오브런던은 조세도피처를 아프리카 케냐로 확장할 계획이라며 그 파렴치함을 더욱 드러냈다. 케냐를 ‘아프리카의 금융센터’로 만들겠다는 사탕발림은 빈자들의 속주머니까지 털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인 셈이다. 조세도피처들은 G8 회담에서 각 정부들의 규제에 대해 반격에 나섰는데, G8회담은 소리만 요란했지 가시적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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