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과 베이비 몬스터, 케이팝 아이돌의 ‘세대론’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금 케이팝 신에는 ‘5세대’라는 호명이 떠돌고 있다. 포털 뉴스 창에선 최근 데뷔해 함께 활동 중인 신인 걸그룹, 하이브의 아일릿과 YG의 베이비 몬스터를 5세대 걸그룹이라 부르는 기사가 흘러넘친다. 역대 아이돌 그룹을 세대로 나누는 건 케이팝 신의 오래된 문화다. 케이팝 첫 세대로 꼽히는 H.O.T·핑클 등이 1세대고,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은 4세대라고 불리는 식이다. 장르 신 내부에서 기원을 찾고 계보를 그려 보는 것이 팬덤의 유희행위와 공식적 담론처럼 소비된다.

나는 아이돌을 세대로 나누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세대라는 명명보다 신의 역사를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 장르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름 붙이기가 목적이 되면 그걸로 논의가 끝나 버리며 주객전도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케이팝 세대론이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역대 아이돌을 데뷔 시기와 계약 기간, 산업 트렌드에 따라 구분하고 묶어 주며 논의의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다.

90년대에 데뷔한 1세대 아이돌은 말 그대로 산업의 첫 페이지를 쓴 의의가 있고, 00년대 중후반 데뷔한 2세대 아이돌은 아이돌 문화를 다시금 대중적으로 유행시키고 ‘한류’를 이뤘으며, 10년대 초중반 데뷔한 3세대에선 케이팝의 글로벌/팬덤 산업화가 본격화됐고, 현재 활동하는 4세대 아이돌은 글로벌 친화적 성격이 더욱 깊어졌다. 20년 동안 케이팝은 점진적으로 얼개가 갖춰지고 산업 성격이 고도화됐다. 각 세대는 짧게는 오 년 안팎, 길게는 십 년의 텀을 두고 있어 ‘세대’로 구분하기에 논리상 문제점은 없다.

5세대 아이돌의 용례를 추적해 보자. 이 말이 등장한 건 작년 2023년이다. 엠넷 아이돌 서바이벌 방송 <보이즈 플래닛>으로 데뷔한 보이그룹 제로 베이스원을 위시해 루네이트, 키스오브라이프 같은 그룹을 5세대라고 부르는 기사들이 나왔다. 만약 보이그룹에 한정한다면 그런 이름표를 달 수 없는 건 아니다.

통상적으로 2010년대 초반 데뷔한 엑소와 BTS가 3세대 보이그룹으로 분류되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NCT·스트레이키즈·TXT가 데뷔했다. 이들을 4세대라고 부른다면 작년과 올해 때맞춰 데뷔한 보이그룹들은 그다음 세대, 5세대인 셈이다. 제베원과 보이넥스트도어, 라이즈와 투어스 등이다. 4세대 보이그룹은 국내 대중적 인지도보다 팬덤 기반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이 특징인데, 현재 보이그룹들은 대중성을 추구하는 것이 트렌드라 변별되는 속성이 존재하긴 한다.

걸그룹의 경우 애매하다. 말했듯이, 베이비 몬스터와 아일릿이 5세대를 자칭하지만 그렇게 부를 만한 특징이 없다. 이른바 4세대 걸그룹 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이 데뷔한 지 2년 정도가 지났다. 아무리 개념을 융통성 있게 쓴다고 해도 2년 만에 세대가 바뀐다는 건 설득당하기 힘든 주장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기획사 관계자들 역시 무리함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케이팝 트렌드가 갈수록 빨리 교체되기에 세대 변화도 빨라진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5세대를 자칭하는 그룹들과 4세대 그룹 사이에 변화라고 할 만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4세대 그룹들은 소규모 인원 구성·걸크러시 콘셉트·월드 투어 활성화 등 3세대가 데뷔한 시기의 트렌드에 대해 구분되는 코드가 있다. 하지만 베이비 몬스터는 ‘3세대’ 그룹 블랙핑크와 음악 스타일과 비주얼 콘셉트 모두 흡사하고, 아일릿은 같은 회사 그룹 뉴진스와 교집합이 많다.

5세대 걸그룹이란 프레임이 유포되는 이유는 알만하다. 2년 전 아이브·케플러·엔믹스·르세라핌·뉴진스에 이어 다시 한번 대형 기획사에서 걸그룹들이 론칭되는 시기를 맞았다. 올해는 베이비 몬스터와 아일릿에 이어 엠넷 <아이랜드 2>로 데뷔하는 걸그룹은 물론 SM에서 차기 걸그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앞선 그룹들과 일정한 주기 차이로 묶여서 구분되는 상황이 마련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슨 아이폰이나 CPU도 아니고 일이 년 늦게 나왔다고 ‘차세대 기종’이 되는 것처럼 홍보되는 건 논리적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건 달리 보면 아이돌이란 대상을 사물화하는 발상과도 연결된다.

보이그룹은 5세대라고 해도 되고 걸그룹은 안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대라는 명명은 근본적으로 자의적이다. 특히나 5세대 운운은 비평적 담론이 아니라 ‘마케팅’ 수단이다. 데뷔 시기상 후발주자가 된 신인 그룹들이 한 세대의 끝물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첫 파도라고 자처하며 세상의 관심과 이미지 자본을 취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5세대 바이럴은 이 산업 관계자들의 지독한 '신상' 강박과 노화에 대한 터부가 엿보이는 것 같아 흘려 넘기기 힘들다. 예컨대 아일릿이 정말로 5세대를 열었다면 데뷔 2년도 안 된 뉴진스는 벌써 기성세대가 돼 버린다. 이처럼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의 5세대론이 보다 무리하게 제기되는 양상은 남성보다 여성의 나이를 대상화하고 상품 가치를 매기는 관습이 우세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같다.

케이팝 산업에 관한 심도 있는 논문과 비평도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5세대 걸그룹' 같은 개념이 퍼지는 광경을 보면 언론 기사를 통해 형성되는 케이팝 담론이란 건 마케팅의 시종 노릇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이는 엔터 산업에서 바이럴 마케팅의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되면서, 언론 홍보 기사가 바이럴을 이루는 하나의 재료로 격하된 현실, 그리하여 기사가 남발되고 내용이 한없이 부박해지는 현상을 증명한다. 지난 2년 간 4세대 대표 주자라고 끊임없이 홍보되던 한 걸그룹은 5세대란 말이 유통된 후 최근 갑자기 ‘5세대 끝판왕’이란 헤드라인으로 소개됐다. 이 웃지 못할 기사는 이 모든 일들이 그냥 일종의 변덕과 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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