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장편소설 ‘사랑의 기초 – 연인들’

오랜만에 연애 소설을 읽었다. 얇지만 나름 2권짜리 책.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 책.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 2명과 국내에서 소설로 이름 높은 유명출판사의 만남은 어찌보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자리하는 것이 무척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국내에서 꽤 많은 베스트셀러 책들을 써낸 유명작가 정이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나의 조금 부끄러운.. 너무나도 큰 인생의 롤 모델 알랭드 보통이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책을 썼단다. 처음엔 <냉정과 열정사이>와 비슷한 그런 책일까 생각했다. 내가 아는 알랭드 보통이 그런 주고받기식 책을, 그것도 한국의 여류 작가와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단 한 장의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냉정과 열정사이> 책과 비슷한 형식으로 출판되었던 공지영 작가와 츠지 히토나리 작가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너무 재미없게 읽었다. (이건 뭐 개인의 취향이니..)

이미 완벽하게 완성되어 베스트셀러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 자리잡고 위풍당당한 기세를 사방으로 뿌려대는 저 책들에 처음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너무 유명한 배우가 내 눈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큰 팬임에도 불구하고 힐끔힐끔 쳐다만 보고 싸인 한 장 받지 못하는 소심한 팬같은 심정이라면 심정이랄까? 뭔가 참 쓰잘 데 없는 고민과 자존심이다. 나는 결국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바겐세일할 때 겨우 손을 뻗어 원하던 티셔츠 한 장을 꺼내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휴"라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계산대로 걸어갔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책을 살피고 있는 모습, 계산대에 줄을 서서 책을 계산하는 이 대형 서점의 풍경은 티비나 신문에서 한창 떠들어대는 ‘종이책은 죽었다’ 라든가, ‘서점가고 이북(ebook) 시대가 오는가’류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문구가 민망할 정도로 북적였다. 나는 한겨울에 따뜻한 붕어빵 3천 원어치를 싸들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책을 양 팔에 고이 안고 지하철로 걸어갔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집에서 봐’라며 당부하는 연인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철없는 어린 연인의 그 모습처럼, 부시럭 부시럭 집까지 가는 그 16분을 참지 못하고 흙냄새가 섞인 듯한 그 바스락거리는 서점의 종이백을 뜯어 책을 꺼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백은 너무 얇아 밀봉해두었던 테잎을 뜯자마자 찌지직 자기 살점을 떨어뜨렸다. 손에 들린 책은 생각보다 더 가벼웠다. 서점에서는 그 두 권이 살짝 묵직하게도 느껴졌거늘, 지금 나의 손에 들린 책은 참으로 가볍디 가벼워 이게 한 권인지 두 권인지 무게로는 가늠할 수 없었다.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 정이현의 책. 남자의 모습이 그려진 알랭드 보통의 책. 어떤 책을 읽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건너 자리에 앉아 서로의 스마트 폰을 보며 낄낄거리는 어린 연인들의 모습을 힐끔 바라보며 나는 정이현의 책에 적힌 ‘연인들’이란 문구를 한 번 더 바라보았고 곧이어 책장을 열어 글을 읽어 갔다.

"사랑이 뭐야?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느낌표라고 대답했다. 꼿꼿하게 허리를 곧추세운! 두 해 전 일이다.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게 답하지 않을 것이다. 2012년 봄. 사랑을 위한 문장부호로 나는 느낌표를 대신 말줄임표를 고르겠다. 지난 이 년 동안 내 마음은 어디론가 천천히 이동했다. 그 길 위에서 이 소설을 썼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나는 딱히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않으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모습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취향이 바뀐 것처럼 상황에 따라 나이가 들고 달라진 나는 그때 그때 새롭게 과거를 주물러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랄까? 내가 너무 슬프고 힘들 때는 그 과거가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또 어느 순간 문득 생각해보면 참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과거인지라,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쳐 온 나만큼 그 과거는 기억 속에서 수없이 많이 변형되었다. 과거는 말 그대로 지나가 버린 것들일 뿐 그립거나 아쉽진 않다. 물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정말로.. 하지만.. 가끔 그 과거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매체를 만나면 그 매체위에 오래된 영사기를 통과한 흐릿한 잔상들이 오버랩될 때가 있다. 그 영상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그립지도 않다. 조금 반갑고 조금 마음이 짠하다. 특히 책을 읽다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소리 없는 무성의 기억의 장면에는 오버랩된 책들의 문구가 자막처럼 나타난다. 그래… 나는 그 영상이 짠한게 아니라… 그 문구가… 책의 문구가 짠한 것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기초 – 연인들 편은 그러한 책이었다. 책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고, 그 결말 또한 평범했다. 예상 가능한 이별 혹은 해피엔딩 같은 상투적인 엔딩은 아니었지만, 지금 손에 쥐어진 커피가 너무 뜨겁지만, 이내 나의 혀와 손은 그 뜨거움에 적응할 것이고, 이 커피는 천천히 식어 갈 것이라는 크게 놀랍지 않은 결말이었다. 그런데 가끔 너무 익숙한 장면이 문득 너무 낯설게 느껴져서 외로워지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이 책의 엔딩은 너무나도 익숙한 화면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와 한동안 책을 덮은 체 멍하니 그 내용을 곱씹어 보게 만들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원이란 단어를 믿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자신들이 영원하다고 생각할까? 굳이 우리가 이별할 것을 예상하고 만나는 연인들도 별로 없겠지만, 동화 속에 나오는 ‘죽을 때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든지 통상적으로 연애의 해피엔딩은 ‘결혼’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연인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다른 생각 없이 좋아하고 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연애는 문득 문득 밀려오는 ‘만약에 니가 없다면?’ 이라든가, ‘니가 아닌 다른사람을 만났더라면?’ 등의 무수한 ‘?’ 가 한없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건 좋게 말해 너무 좋아하기에 오는 불안함일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해 아무 생각없이 한없이 좋아하던 시기가 지나갔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치면 연애의 시작이나 끝이 ‘!’ 이거나 말줄임표라면, 우리네 연애의 과정은 ‘?’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질문과 대답. 상대에 대한 무수한 궁금증, 호기심.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질문들 그리고 서로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만큼 소중한지 등의 질문이 딸린 물음표.

어제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헤어지는 걸 상상하진 않지만, 헤어지는 걸 예상하진 않지만, 혹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연애라는 건 끝날 수도 있다고 알곤 있지만,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갑자기 내 삶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 헤어질 수도 있지만 그게 오늘 혹은 내일이 아니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 연애에 대해 고민하고 ‘언젠가는 나도 남자친구와 헤어지겠지?’라며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하지만 당장 그와 헤어질 마음이 없는 그녀의 모순적인 고민을 듣고 있는 동안 마음이 아려왔다. 차라리 친척이 죽거나, 알던 사람이 죽어 장례식에 갔을 땐 그 당시는 슬프지만 장례식을 나오는 순간 그 슬픔은 어느 정도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함께했던 연인은 나와 길든 짧든 가장 직접적인 관계였고, 그 존재가 사라지면 삶은 순식간에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촤르르르 빨리감기처럼 지나가는 추억들과 결국 지금 현재에서 뚝 끝나버린 영상. 뚜—- 하고 끝남을 알리는 기계의 소음은 마치 죽음을 알리는 병원 응급실의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기계소리처럼 인생의 한 이야기가 그렇게 죽어버렸음을 통보한다.

연애란 무엇일까? 그 연애의 끝은 무엇일까? 세삼 책을 끝내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보니 어제 친구와 했던 이야기들과 나의 추억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허나 앞서 말했듯 나는 연애란 ‘?’ 인 것 같다. 물음표는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향해 던지는 궁금함, 호기심이다. 즉 이것은 현재가 미래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

"응. 안녕."

처음 만난 순간에도 헤어지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안녕’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그들은 불현듯 깨달았다. 각자의 길을 향해 뒤돌아서, 서로의 뒤통수 반대 방향으로 한 발짝 내디딘 것과 거의 동시였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나눌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완벽한 작별인사였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 중-

마치 시작과 헤어짐이랑 두 가지 의미를 모순되게 가지고 있는 안녕이란 말. 결국 헤어짐의 안녕은 미래에게 던지는 새로운 안녕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모든 관계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라면, 사랑의 시작과 끝이 안녕이라면, 결국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안녕..

나는 나의 과거에게 다시 한 번 작별을 고한다.

안녕…

나는 나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게 다시 한 번 반가움의 인사를 건넨다.

간만에 내 맘을 짠하게 만든 책. 정이현의 장편소설 사랑의 기초 -연인들-

주식 :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전시회, 책 등 문화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글을 쓴다. http://blog.naver.com/toyeyes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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