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형’ 구글의 배신, 노동자들이 떨고있다 [평범한 이웃, 유럽]

카지노 : 뉴질랜드 출신인 컴퓨터 엔지니어 A씨는 구글 스위스 취리히 지부에서 일한 지 10년쯤 된다. 가족으로는 역시 뉴질랜드 출신인 아내, 그리고 아이가 둘 있다. 얼마 전 구글이 대량 해고를 발표했을 때 A씨 부부는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해고되면 스위스를 떠나야 하나, 이곳을 고향으로 알고 자란 아이들은 어쩌나, 새 직장을 찾는 건 쉬울까.

ai주식/주식ai : 유럽 출신이 아닌 A씨가 가족과 스위스에서 살 수 있는 건 구글을 통해 취업 비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 출신이라면 스위스에서 일하다 실직한 후에도 이 나라에 석 달 동안 머무르며 새 직장을 찾을 수 있고, 이 기간은 대부분 쉽게 연장된다.

하지만 그 외 국가 출신들은 해고가 결정된 뒤 스위스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30일로 제한되고 연장 조건도 까다롭다. A씨 부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스위스에서 계속 살기를 바란다. 고민 끝에 이들은 영주권을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영주권 신청 시 제출해야 하는 어학 시험 성적을 얻기 위해 급히 독일어를 공부 중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B씨는 구글 취리히 지부에서 일하게 된 남편과 함께 2014년 봄, 취리히로 왔다. 당시 임신 3개월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임신과 출산을 겪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B씨 부부의 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치료를 받은 지 5년쯤 지나서야 아이 상태가 나아졌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B씨의 취업비자도 나왔다. 결혼 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B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려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구글의 대량 해고 소식을 들었다. 남편 직장인 구글에 가족의 스위스 거주 여부가 달려 있는 터라 암담했다. B씨는 여성과 장애인 인권이 취약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발달장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나를 며느리 취급도 안 하고 남편에게 계속 이혼을 강요해요. 방글라데시에서 이혼을 하면 여성은 자기 아이를 제대로 만날 수도 없어요. 이제 겨우 스위스에 정착했다고 느꼈는데, 구글이 이렇게 갑자기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신의 직장’ ‘가장 다니고 싶은 직장’으로 늘 최상위권에 꼽혀왔던 구글이 지난 1월20일 직원 1만20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의 연이은 대량 해고에 구글도 동참한 것이다. 빅테크 기업 중 구글은 ‘착한 형’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구글 안팎으로 큰 충격이었다. 2000년대 말 유럽발 금융위기 때 구글은 경쟁사들의 정리해고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신규 채용만 잠시 중지했을 뿐이다. 이마저도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당시 채용 중지 정책에 대해 ‘실수’라고 평가했음이 나중에 알려졌다. 경쟁사들이 해고한 좋은 인력을 구글이 흡수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회사들이 연이어 해고를 발표할 때도 구글은 예외일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았으나 그 믿음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구글 최초의 대규모 해고 결정은 내부에서도 극소수 고위직들만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전 세계를 무대로 한 해고 사태

미국에서는 발표와 동시에 해고자들의 내부 시스템 접속이 금지됐다. 해고 소식은 직장이 아닌 개인 이메일로 전달됐다. 구글 직원들은 회사가 발표한 해고 인원 1만2000명 중 현재 약 절반이 미국에서 해고되었다고 추정한다. 수치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구글이 구체적인 해고자 수와 명단, 해고 사유 등 어떤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 시스템에서 누군가의 프로필을 클릭했을 때 정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 보고, 또는 회의 때 누군가 미리 말도 없이 사라진 걸 보고서야 그 사람이 해고되었다는 걸 알게 되는 상황이다. 구글은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 지부를 두고 있다. 북미에 32곳, 유럽에 24곳,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18곳, 라틴아메리카에 6곳, 아프리카 및 중동에 5곳이 있다. 전체 해고 인원 중 나머지 절반이 미국 외 지부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갑자기 이메일로 해고가 통지된 미국과 달리, 타 지역에서는 곧 닥칠 일을 앞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 일이 언제 닥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국가별로 해고 절차와 관련된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해고가 법적으로 가능한지부터, 해고 얼마 전 통지를 해야 하는지, 퇴직금은 얼마이고 실업급여는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지부는 1000명이 넘는 직원 중 아무도 해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노동법상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은 개인을 회사 사정 때문에 해고하는 건 불가능하다. 구글 내부에서는 ‘나도 프랑스에서 일하고 싶다’ ‘프랑스 구글러는 1등 시민’ 같은 메시지를 담은 풍자적 밈(meme)이 유행하고 있다. 언제 해고되어 내부 시스템 접속이 막힐지 몰라 불안한 직원들은 ‘디스코드’라는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소통하고 있다. 전·현직 구글 직원임을 인증한 뒤 가입할 수 있으며, 나라 및 부서별로 만들어진 여러 게시판을 통해 해고와 구직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다.

구글의 여러 지부 중에서도 현재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스위스 취리히 지부다. 이곳은 미국 바깥에 있는 구글 지부 중에서 엔지니어 수 기준으로 인도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구글이 유럽에 세운 24개 지부 중 핵심에 해당한다. 구글 직원을 구글러(Googler)라고 하는데, 취리히에서 일하는 구글러는 주글러(Zoogler, Zürich+Googler)라고 불린다. 임시직을 포함한 주글러는 현재 약 6300명, 이들의 출신지는 85개국에 이른다(구글 취리히 지부는 직원 구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 수치는 구글에서 다문화 세미나를 진행했던 외부 전문가가 밝힌 내용이다).

미국 외 각 구글 지부가 직원의 약 6%씩을 해고할 거라는 추측이 나오지만, 주글러들은 취리히 지부의 경우 이 비중이 더 높을 것이라 보고 불안해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유럽의 허브인 만큼 다양한 사업이 진행 중이고, 향후 전망에 따라 그중 일부 사업은 이번 해고 과정에서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 둘째, 다른 나라와 비교해 직원들의 연봉이 가장 높다. 높은 물가 때문인데, 구글 입장에서는 취리히에서 해고를 늘림으로써 비용을 더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다. 셋째, 스위스에서는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해고하기가 더 쉽다. 근무 연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개월 전에만 통지하면 특별한 이유 없이 합법적으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이웃 국가 프랑스와 대조적인 부분이다.“해고 기준은 러시안룰렛”

실직의 고통이 누구에게 더 큰지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구글의 대량 해고가 단지 밥벌이가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시리아 출신 직원들이다. 유럽연합 혹은 유럽자유무역연합에 속하지 않는 이들 국가 사람들은 해고 시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글러 중에는 러시아인이 상당히 많은데, 그 이유는 취업비자 때문이다. 이들은 구글 본사에 고용되어도 외교적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구글 취리히 지부에서 1년 정도 일한 뒤 사내 지부 이동을 신청해 미국으로 옮겨간다. 이런 사정으로 현재 취리히에서 일하는 러시아인 수백 명은 해고 이후 다른 기회를 찾지 못해 러시아로 돌아가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자국민 남성을 심사나 훈련도 없이 전쟁터로 밀어넣는 나라에 누가 돌아가고 싶겠는가.

우크라이나인도 비슷한 상황이다. 구글은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인 지원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면접을 볼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고용된 우크라이나인들이 해고되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 ‘설마 그렇게까지는 안 하겠지’ 하는 생각은 근거 없는 바람이다. 앞서 미국의 해고 과정에서는 출산휴가에 들어간 직원, 십수 년 일한 초기 멤버, 최근에 승진했을 만큼 성과가 좋은 직원도 해고되었다. ‘해고 기준은 러시안룰렛’이라는 자조적 불만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전쟁 중인 국가 출신이라고 예외인 법은 없다.

지금까지 높은 연봉을 받고 훌륭한 경력을 쌓아온 직원들이 해고되는 건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이들도 있다. 쉽게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한다. 주글러 6300여 명 중 6%에 해당하는 약 380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취리히 칸톤(州) 정부는 당장 이들에게 실업급여를 최대 2년간 지급해야 한다. 실업급여 액수는 해고 전 6개월 동안 받은 급여 평균의 70%, 부양할 자녀가 있거나 저소득자일 경우 80%다. 물론 상한선이 있다. 제아무리 고소득이었더라도 실업급여는 매월 최대 9880스위스프랑(약 1340만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구글 급여는 물가 높은 스위스의 IT 기업 중에서도 높은 편이라 해고자들은 실업급여 최대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이 정도 규모의 실업급여를 지급한 전례는 드물다. 게다가 이들이 동시에 IT 업계에서 구직에 나설 경우 취업시장의 구조가 흔들린다. IT 기업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심해진 경쟁 탓에 눈을 더 낮춰야 할 것이다.

나는 2012년에 구글 취리히 지부를 취재한 적이 있다. 직원이 현재의 8분의 1에 불과할 때였다. 당시 채용 매니저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고객은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다. 그들의 수요에 맞추려면 구글의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구글의 검색엔진 언어는 2007년에 이미 40개를 넘어섰다. 대략 70개국,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약 99.3%를 커버한다. 다양성은 구글의 DNA다.” 구글의 상징이자 무기였던 ‘다양성’은 해고 사태를 맞아 다른 의미를 띠게 됐다. 인터뷰에서 국적을 묻지 않던 이 회사는, 각국의 노동법을 한 줄 한 줄 들여다보고 있다. 출신지를 떠나 ‘구글 제국’에 합류했다고 믿었던 직원들은 거주 비자를 확인하는 중이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를 커버한다고 자부하던 구글은, 자사 직원을 커버하는 데 실패했다.기자명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구글#IT기업#해고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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